배타적인 기독교
정말 똑똑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난 사람들이다
나야 목사니까
목회자들 중에서나 신학자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신학교 재학 시절에는
독일 구약 학자들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어쩌면 저리 박학다식할까….
그저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
요즘 그런 사람을 하나 만났다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인 배철현 교수다
하버드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로 고전 문헌학을 전공하고
구약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비롯해
다양한 고대 근동어의 권위자이며
요즘 대세라고 하는 인문학자로 이름을 날리는
배교수님의 글은 그의 이력만큼 화려하고 깊이가 있었다.
간혹 똑똑한 사람의 글에서도
논리를 무시하거나 건너뛰는 듯한
약점들이 보여지기도 하는데
이 분의 경우에는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내 소견으로는…)
하지만 그렇게 박식하게 구약의 성경을 꿰뚫고 있는 와중에
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만났다.
“세계 주요 종교의 핵심과 각 종교의 특징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성급한 종교 비교는 종교간의 우열을 매기고
자기 종교의 기준에서 다른 종교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제 그 다름을 찾아주는 행위(톨레랑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는 처사는
지난 2000년 이상 면면히 흘러와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에 대한 모독이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상징 체계과 행동 양식이 있다.
이것들을 심도 깊게 연구하다 보면
개별 종교에서 지향하는 “길”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배철현의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그리고 그 하나됨을 미가서를 해석하면서
“선을 행함”이라는 것으로 귀결시킨다
어쩌면 종교다원주의자들의 눈에 비치는
기독교인은 편협하고 꽉막힌 무식쟁이처럼 보일 수가 있다
게다가 그 기독교를 수호하는 나 같은 개신교의 목사는
상대하기가 불가능한 자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아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기독교도 그저 세상 종교들 중의 하나이고
예수도 그저 석가와 마호메트같은 창시자들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그 글을 읽고 있는데 한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기독교는 철저하게 배타적인 종교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구원의 문제를 타협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구원의 길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신)이 만드신 것이기에
우리는 그 길을 수용하고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운동경기의 규칙에 따라서 경기를 운영하듯이…
구원의 길은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왜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인들을 향해
톨레랑스의 미덕을 보이지 못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삶의 양식의 문제라면 몰라도
진리에 관한 문제라면
톨레랑스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나에게 왜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유일한 분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은 인격적으로 탁월한 분들이고
많은 대중에게 선한 가르침을 해주었고,
선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었을 찌라도
정작 나를 위해서 죽었다는 분은 없다
나는 나의 삶의 가장 큰 문제인
죽음과 그 죽음의 그늘 아래서 펼쳐지는 모든 실존의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결받았다
이런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 말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질 지 몰라도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알 수 있다.
성경은 좋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도,
선한 일을 독려하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성경은 구원의 길인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에 대한 책이다
어쩌면 성경이라는 경전을 연구하면서
구원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예수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위해서
자신이 쌓아 놓은 모든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겼던
사도 바울이 생각난다
맞다
“예수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
우리가 살아가는 길지 않은 인생에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최주호 목사
현 멜번 순복음 교회 담임